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87호

미국의 남중국해 정책을 보는 2가지 시각
〈2〉트럼프 행정부의 남중국해 정책과 아세안의 대응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특임교수

이  선  진

한국해양전략연구소가 지난 6월 1일 제12차 제주포럼의 일환으로 제주에서 개최한 남중국해 분쟁에 관한 회의를 참관한 바 있다.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열띤 논쟁도 있었다. 주제발표 중 필리핀 참가자의 발언이 흥미를 끌었다. 그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결정 이후 중국을 압박하기보다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필리핀 정부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에 대해 나의 앞자리에 있던 한국 인사는 필리핀 입장을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필리핀뿐 아니라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중국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다른 분쟁 당사국들도 PCA 결정 이후 오히려 중국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아세안(ASEAN)의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 정부 이후이다. ‘America is back in Asia’를 선언하면서 남중국해 분쟁에 적극 개입하고 대(對)아세안 외교를 강화하였다. 이에 힘입어 아세안은 중국의 ‘압박’(assertive) 정책에 강하게 맞섰다. 그러나 2013년 6월 오바마-시진핑 회담에서 ‘미·중 신형대국 관계’ 논의가 있은 후 미국은 태도를 바꾸어 아세안에게 남중국해 분쟁의 확대를 자제시켰다. 반면, 중국은 그해 남중국해 매립 건설을 개시하여 미국을 크게 실망시켰다. 오바마는 중국에 대한 불심감에서 견제 전략을 시작하였다. 남중국해에 미군 함정을 투입하였고(항행자유작전: FONOP), 호주·프랑스·인도 등과 함께 감시활동을 전개하는 등 국제 대항체제도 구축하였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조기 타결을 추진하였고 미-아세안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아세안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트럼프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다시 바꾸고 있다. 중국에 대하여 대립보다 ’협력’을 강조하면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하여 느슨한 태도를 취하였고 두 차례나 미 해군의 FONOP을 승인하지 않다가 지난 5월 처음 실시하였다. 또한, 전에 비하여 동남아에 대한 관심도 낮다. 트럼프 취임 초기 일본·중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무·국방장관을 잇달아 동북아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4월 말) 이후에야 동남아에 관심을 보였다. 미국은 아세안에서 개최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가한다고 발표하였다. 5월 초 미-아세안 외교장관회의를 워싱턴에서 개최하였고 6월 매티스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하여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아세안의 마음을 사지 못하였다.

  아세안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남중국해 분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세안은 작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국제중재재판소 결정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미군의 FONOP에 반대하였고, 필리핀 대통령(아세안 의장국)은 트럼프의 방미 초청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이후 미국에 대한 불신감은 한층 높아졌다. 최근 아세안의 사회 지도층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54% 이상의 응답자가 미국이 ’의존할 만한’(dependable) 국가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중국 관계는 지난 10년 동안 ’협력과 경쟁’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아세안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하여 정책적 일관성을 결여하여 신뢰를 떨어뜨렸다. 반면, 중국은 일관되게 ’채찍과 당근’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경제적 실리를 제공하는 한편, 압박정책도 병행한다. 베트남·필리핀·미얀마는 중국의 압박을 경험한 후 자세를 낮추고 있다. 중국은 이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압박을 가하여 자신의 영향권을 동북아로 넓히려고 한다. THAAD 한국 배치가 중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면 시진핑이 트럼프와의 회담과 전화통화에서 강도 높게 제기하였을 것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대(對)아시아 정책에 일관성을 결여한 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에 집착하거나, 동남아에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을 포함 중국 주변국들은 중국의 채찍과 당근 전략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 금번 KIMS Periscope 제 87호도 6월 21일자로 발행되었습니다.

이선진 대사(sunjinlee@hotmail.com)는 33년 이상 봉직한 직업외교관 출신으로서 외교부 외교정책실장 · 주 상하이 총영사 · 주 인도네시아 대사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동남아지역문제를 집중 연구하면서 서강대 동아연구소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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