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58호

중재판결 이후 남중국해 문제의 현실적 해결방안 : ‘운용적 신뢰구축’의 중요성

싱가포르 RSIS
선임연구위원

샘 베이트만
(Sam Bateman)

중국과 필리핀 간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중국의 완전한 패배로 일단락되었다. 비록 중국이 판결결과를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남중국해에서의 이해관계가 얽힌 이해당사국들은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행동을 스스로 자제할 것이다. 잠정적으로 이번 판결은 남중국해에서의 긴장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한 이해당사국들 간의 새로운 대화와 협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의 한 긍정적 사례를 보면, 필리핀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과의 새로운 협상을 시작했다.

  남중국해 분쟁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신랄하고 도발적인 비판 보다는 발전적인 대화가 요구된다. 발전적인 대화는 해양과학연구·조업관리·해양환경보호·해양법 준수 및 해난사고 발생 시 탐색 및 구조 활동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협력방안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중국해에서의 이해당사국가 간 불신이 고조됨에 따라 이러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위한 발전적인 대화와 협상은 순조롭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떠한 상황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우선순위 선정의 어려움을 묘사하는 ‘chicken and egg‘(닭이 먼저냐 아니면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 상황이 남중국해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국가 간의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 해양신뢰구축방안(MCBM : Maritime Confidence-Building Measure)으로서의 해양협력이 먼저 달성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전략적 신뢰’(strategic trust)가 먼저 형성되어야만 해양협력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다시 말해, 협력을 위해서 신뢰가 선행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 협력이 선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인과관계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은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부 학자 및 전문가들은 국가 간의 상호신뢰 형성을 위해서는 당사국 간의 민감한 사안보다는 ‘덜 민감한 사안‘(softer issues)들에 대한 협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조업관리·해양과학연구 및 해양환경보호 등과 같은 사안들에 대한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양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와는 상충되는 의견을 가진 이들은 국가 간 협력을 위해서는 서로 간의 ‘전략적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신뢰가 없이는 협력이 불가하다고 믿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ASEAN 국가들 간의 전략적인 신뢰가 부족하며, 이러한 신뢰의 부족이 해양협력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ASEAN 국가들과의 협력을 목적으로 해양과학연구·환경보호·탐색 및 구조·초국가적 범죄행위 등을 관할하는 전문가 위원회 설립을 위한 해양협력 기금조성(Maritime Cooperation Fund)을 제안해 왔다. 또한, 2016년에 개최된 보아오 포럼(Boao Forum)에서 남중국해에서의 자원 및 해양환경 협동 연구를 위한 동남아 연구 센터(China-Southeast Asian Research Center)의 건립을 공표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ASEAN 국가들은 중국의 제안들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며 협력을 위해서는 더욱 큰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과 관련한 중국의 일정수준의 양보 또는 지난 중재재판소 판결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자 하는 중국의 가시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국가 간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분위기다.

  신뢰와 협력 중 어느 요소가 선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 하에서는 남중국해에서의 해양생태를 보호하고, 초국가적 해양범죄를 방지하며 해양 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의 해양협력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진행시킬 수 없다. 협력은 단순히 필요한 사안이 아닌 서로 간의 의무이다. 남중국해 연안의 국가들은 모두 1982년 체결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의 체결 당사국들로서 해양법협약이 규정하는 해양 및 해양활동의 관리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러한 상황적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앞으로의 길은 명확하다. 신뢰가 협력을 위한 선행조건으로 인식되어져서는 안 된다. 해양협력은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해양신뢰구축방안(MCBM)으로 여겨져야 한다. 남중국해 사안과 관련한 국가 간의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의견대립과 해양주권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분쟁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남중국해에서의 해양 자원조사 및 보호를 비롯한 낮은 차원의 해양협력은 이와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현실적인 해결방안은 신뢰구축을 위한 ‘이중접근’(dual track approach)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다. 신뢰는 두 가지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상위수준의 신뢰구축과 관련된 것으로써, 현재 실종되어 있는 영유권 분쟁관계에 있는 강대국과 주변국 간 ‘전략적 신뢰’ 이다. 상위수준에서의 전략적 신뢰는 주로 전통적인 국가안보·주권·분쟁방지 및 해결 등의 사안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위수준의 전략적 신뢰는 사안의 민감한 성격으로 인해 쉽게 형성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해결방안은 전략적인 수준에서의 신뢰보다는 한 단계 낮은 차원의 ‘운용적 수준에서의 신뢰’(operational trust)를 구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가 정부차원의 협력이 아닌 민간차원의 해양협력 활동으로서 민간기관 간의 해양협력 사업들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간차원의 운용적 신뢰의 점진적인 형성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상위수준의 전략적 신뢰도 발전시킬 수 있다. 운용적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남중국해에서의 민간 해양협력을 관할하는 포럼의 설립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양국 해군 간의 군사적 협력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해양안전·해양법 준수· 탐색 및 구조 등과 같은 수단을 집행하기 위해 운영되는 해양경찰과 연계한 민간 해양활동 등을 의미한다. 최근의 ASEAN 해양경찰 포럼(ASEAN Coast Guard Agencies Forum) 창설 제안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중국과 아세안국가들이 남중국해를 평화롭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함께 서로의 차이점을 해결하고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양 영유권분쟁은 짧은 시간 내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중국과 ASEAN 국가들 간의 협력과 대화를 위한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 금번 KIMS Periscope 제58호도 10월 1일자로 발행되었습니다.

※ 이 글은 호주 해군 제독(준장)을 역임하고 싱가포르 Rajaratnam 국제관계 대학원(RSIS)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인 Sam Bateman 박사가 한국인 독자를 위해 기고한 것이며 영어원문은 하단의 참고자료를 클릭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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