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57호

남중국해 중재판결의 국제법적 및 정치적 함의: 중국의 시각

중국남해연구원 산하
중·미 연구소장(워싱턴)

홍 농 (Hong Nong)

지난 7월 12일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과 함께 약 3년간 지속된 중국과 필리핀 간의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중재재판은 종료되었다. 이번 남중국해 사안에 대한 중재재판소의 판결은 과거 비슷한 성격의 분쟁사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필리핀에게 완전한 승리를 안겨준 이번 판결은 중국에게는 예상치 못한 매우 충격적인 결과였다. 물론 이번 중재재판소의 판결은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과 필리핀 간의 완전한 분쟁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판결사례는 법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많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의 다양한 해양분쟁 사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라는 제3자에 의한 강제성이 있는 문제해결제도에 의존하는 선례를 남겼다. 물론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기반한 강제성이 있는 분쟁해결제도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 및 해양경계획정과 관련된 분쟁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중재재판의 사례가 지역안보에 미치는 파장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중재재판의 사례는 단기적으로는 남중국해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지역 국가 간의 합의된 ‘행동강령’(an agreed code of conduct)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 간 협력의 흐름을 지연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비록 몇몇 분쟁사안들에 대한 명확한 법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 측면이 있지만, 분쟁해결과정에서 유엔해양법협약의 기조 및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기보다는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298조는 주권·해양경계획정 및 군사행동 등의 사안과 관련한 국가 간의 분쟁에 있어서 특정 국가가 강제적인 분쟁해결제도 및 기구에 의한 문제해결을 원하지 않을 시 강제적인 구속을 받지 않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협약 제298조는 국가 간 특정한 분쟁사안이 제3자에 의해 강제적인 절차에 의해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국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엔해양법협약 체결 국가 간 의견수렴을 통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중재재판소의 어떠한 판결도 중국과 필리핀 간의 진정한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중재재판소의 판결은 국제법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정치적 게임’(political game)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중재재판 과정에서 중국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것은 필리핀의 일방적인 제소에 의한 중재재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재판과정에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중재재판소와 국제법을 경시한다거나 국가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의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국제분쟁해결제도 및 기구의 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다. 1980년대부터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와 같은 분쟁해결 기구 및 제도를 활용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동참을 독려해 왔다. 더불어 UN과 국제기구들은 국가 간 분쟁해결을 위한 다양한 창구 및 제도의 실질적인 역할 증대를 위해 국가 간의 분쟁발생 시 국제분쟁해결기구를 통한 제소와 중재절차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분쟁해결기구 및 제도를 통해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최초에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 되었다.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효된 이후 해양분쟁과 관련한 약 20건의 사안들이 국제 사법재판소에 제소되었으나, 이 중 약 10건만이 중재절차에 있다. 이러한 결과는 다양한 분쟁사안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엔해양법협약상의 조항들이 매우 복잡하고 해석 및 적용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분쟁당사국 중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소한 중재절차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국가는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비양심적 국가’로 비춰질 수 있다.

  중재재판소가 국가 간 분쟁의 쟁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로까지 재판관할권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중국해 사안의 경우, 중재재판소는 필리핀과의 상호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고 했던 중국의 외교적인 입장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재판관할권을 집행했다. 중재재판소의 일방적인 관할권 행사는 중재재판 참여를 희망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입장과 분쟁 당사국 간의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국가의지를 무시한 처사이다. 남중국해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재판소의 과도한 관할권 행사는 자발적으로 지역해양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국가의 권리를 약화시켰다. 더불어, 국가 간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제도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중재재판소가 관할권을 더욱 확장시켜가는 가운데 지역 국가들의 합법적이고 타당한 주장들을 무시한다면, 유엔해양법협약 체결 당사국 간의 긴장은 고조될 것이며 중재제도의 신뢰성은 떨어질 것이다.

  한편 이번 남중국해 중재결과는 남중국해에서의 해양분쟁의 완전한 해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중국과 ASEAN국가들로 하여금 유엔해양법협약 제123조가 규정한 지역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한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가속화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남중국해에서의 해양분쟁은 이해관계를 가진 남중국해 지역 국가들 간의 지엽적인 분쟁으로 시작되어 중국과 미국 간의 경쟁적인 게임 양상으로 진화 되었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과 미국은 서로의 핵심이익(core interests)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중국과 미국이 서로에게 손가락을 겨누지 않고도 서로의 영향력을 충분히 공유하고 발휘할 수 있는 광대한 지역이다. 중국의 성장에 의한 ’지역적 권력이동’(regional power shift)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은 남중국해에서의 관할권 및 해양영유권 주장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유엔해양법협약에서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와 같은 미국의 합법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하나의 현실적인 방안은 탐색·구조 또는 인도주의적 구호활동 등과 같은 해양협력발전 분야를 모색하는 것이다.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퇴치를 위한 양국 간의 노력은 성공적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탐색·구조 및 인도주의적 구호활동 등은 양국의 해군력을 통해 선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분야들이다. 남중국해는 복잡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를 내포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국가 간 협력과 배려는 주요 해상교통로의 평화로운 사용과 더불어 지역적 안정을 갖고 올 것이다.

 

※ 이 글은 현재 중국남해연구원 산하 중·미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Hong Nong 박사가 한국인 독자를 위해 기고한 것이며 영어원문은 하단의 참고자료를 클릭하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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