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 Periscope

KIMS Periscope 제127호

미∙북정상회담을 보는 또 다른 시각

― 향후 과제를 중심으로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전 성 훈

북핵 완전폐기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북정상회담이 ‘용두사미’ 격으로 막을 내렸다. 남북분단 이후 처음 열리는 세기의 정상회담이었던 만큼 북한의 핵포기를 실현해서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의 디딤돌을 놓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이러한 기대와 희망에 부합하기에는 국제언론의 표현대로 ‘낮은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미국은 후속 고위급협상에서 구체적인 사항에 합의하고 트럼프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의 완전포기라는 핵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을 위해서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전례 없는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트럼프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하는 등 북핵폐기에 대한 확실한 전망도 서지 않는 상태에서 쏟아져 나온 메가톤급 발언들이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는 공동성명이 매우 포괄적이라며 자부했지만 이번 공동성명의 내용은 과거 미∙북 간에 체결된 합의에 비해 그 범위와 내용 면에서 포괄적이지도 못하고 깊이도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비해 미흡한 합의이다. 미∙북 양국이 1993년 6월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가진 고위급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 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 30여년 전에 북한의 핵개발 초기에 차관보급간에 합의한 문건과 별다를 바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트럼프의 핵심 목표는 김정은의 입에서 ‘핵개발을 포기하고, 보유한 핵무기는 폐기하며, 비핵국가로서 NPT에 복귀하겠다는 다짐’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북한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해 한미가 만든 ‘비핵화’ 용어를 차용해서 한미동맹 와해를 목표로 하는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관철하려는 선대의 전략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공동성명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머문 것은 이번 회담이 핵심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은 이 문구를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로 해석하겠지만 북한은 남한에서의 완전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여기에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 북한이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을 개발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1993년 미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된 이래 모든 주요 문건에서 미국은 북한을 핵을 포함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침략하지 않는다는 안전보장 약속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핵을 보유한 북한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북한은 2016년 7월 6일 정부 대변인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체제보장 요건을 제시했다.

  • 첫째, 남조선에 끌어들여 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
  • 둘째,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폐하고 세계 앞에 검증 받아야 한다.
  • 셋째,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한다.
  • 넷째,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 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여야 한다.
  • 다섯째,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

  이들 요구사항은 북한이 1991년 9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실현하자면서 제기한 사항과 다르지 않다.

  이번 미∙북정상회담 과정에서 합의이행 여부를 검증하는 문제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북한의 핵포기 여부가 불확실하고 합의 위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현상이다. 과거 남북한 군비통제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의 태도를 돌이켜 볼 때, 미국 양국이 북핵폐기를 위한 실무협상을 추진하면서 검증을 둘러싸고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포기 의지의 진실성을 국제사회에 밝히는 길은 기존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자료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는 성역 없는 사찰’(anytime, anywhere inspection)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고와 검증을 생략한 채 자의적으로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은 북한의 핵포기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우리의 옛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말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의도를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그 만큼 경솔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선현들의 경구이다. 또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도 있다. 매사에 방심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처세하라는 격언이다. 북핵 폐기와 검증을 논하는 데 있어서 이 두 가지 속담이 한국이 나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해줄 것으로 믿는다.

전성훈 박사(dr.cheon@asaninst.org)는 통일연구원장과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거쳐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분야는 북핵문제∙남북관계∙통일정책∙ 지역안보 및 국가전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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